'대학'이라는 고귀한 이름 뒤에 숨어 득실 저울질만...진정 교육 생각한다면 도덕과 윤리가 기본
대학재정지원, 대학자율화만 주겠다면 '무조건 OK'...돈 이외 다른 잣대는 없어
출신 대학마저 지명철회 촉구 후보자의 덕(德)
[U's Line 유스라인 박병수 편집국장] 김인철 교육부장관 후보자의 지명 철회를 촉구하는 시위와 성명서가 연일 언론을 타고 있다. 대학 구성원 교수, 직원, 학생단체들이 총망라돼 지명철회를 촉구하고 나선 가운데 이 중에는 김 후보자의 출신 대학인 한국외대 현 학생회마저 김 후보자 장관지명 철회를촉구하고 나서는 장면을 목격하면서 ‘그대는 참으로 덕(德)을 못 쌓았구나’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이 같이 김인철 후보자의 지명 철회를 촉구하는 의견표명이 날로 거세지고, 연일 터지는 김 후보자의 비리의혹에도 입장표명을 하지 않는 집단도 있다. 첫 번째는 대학의 총장이나 학교법인 이사장, 그 외 대학운영에 관여가 돼 있는 이른바 대학경영자, 더 쉽게 표현하면 ‘대학 CEO그룹'들이다. 자본주의의 과다한 식성으로 대학은 대학으로 존재하지 못하고, 도떼기 시장(市場)이 됐다해도 지나치지 않다. 대학을 시장주의자들이 ‘대시완장(대학을 시장으로 완전 장악)’할 수 있도록 만든 큰 틀은 자본의 속성에서 출발하지만, 자본주의를 표방한다고 모두 다 한국의 대학 같지는 않다.
5·16 군사쿠데타 직후 대학은 계획경제에 버금가는 당시 박정희 체제에서 산업일꾼 조달 역할을 충실히 했다. 땟거리도 없던 시대적 상황에서는 모든 것이 용서됐다. ‘근대화’ ‘산업강국 실현’이라는 구호는 군부독재가 정점을 찍은 1980년대말까지 펄럭이며, 대학 역할은 강제 됐다. “대학생 놈들,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맨날 데모짓이나 하고 짜빠졌으니 나라꼴이 뭐가 되겠냐”는 보릿고개 세대들의 한탄 속에는 '졸업해서 큰 기업 들어가는 게 최고의 선(善)'으로 자리를 차지 했다 .
이후, 1997년 IMF 외환위기라는 ‘국란(國亂)’은 대학을 완전히 인력양성소로 내몰기에 충분한 강제력과 구속력의 위엄을 떨쳤다. 1996년에 도입된 ‘대학설립준칙주의’도 IMF 직후에는 있는둥, 마는둥 하다가 2000년에 들어서자마자 전국에서 대학들은 우후죽순 생겨났다. 시골 오지에 자리잡은 교지, 화장실 물도 제대로 내려가진 않는 건물, 뒷거래로 임용된 교수, 수익용기본재산이라고 해봐야 수익성은 없는 임야들 투성이인 엉터리 대학들이 학교설립허가를 받으려 애를 썼던 이유는 어떻게해서든지 학생을 유치해오는 것이 돈이었기 때문에 대학들이 내세운 것은 ‘졸업후 취업보장’이라는 어느 기술학원에서나 내다붙일법한 자극적 단어로 학생들을 유치했다. 그들에게 학생은 현금인출기였다.
대학의 정도(正道)와 참으로 불편한 신자유주의 신봉자
이러다 2000년대 들어 대학은 장사로 치면 ‘대목’기간이다. 등록금을 연 10% 이상씩 수년간 인상하면서도, 교육환경에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몰염치한 법인 이사장들이 수두룩 했다. 한국은 이미1984년부터 저출산의 늪에 빠져왔지만 평균1,74명이라는 ‘저출산 늪의 경고’를 엄중히 받아들인 교육당국, 대학가의 사람은 없었다.
“왜, 아이들을 낳지 않지?”라며 그 의구심에 깊이 천착했더라면 한국의 경제·사회는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아이들을 낳지 않는 것은 비단 교육의 문제만이 아니요, 그렇다고 경제만의 문제도 아닌 세종대왕이 다시 오신다해도 결코 해법을 찾지 못할 것이라는 구조적, 총체적 난제가 엉켜 나타나는 한국의 현실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대목이 바로 ‘저출산’이다. 저출산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친 분야가 교육, 그것도 이른바, '이름있는 대학'에 진학해야 제대로 된 인생을 살 수 있다는 사회 능력만능주의가 필터링 없이 시장만능주의와 맞물리면서 대학은 교육기관, 학문연구기관, 더 나가 한 사회의 자유, 정의, 진리의 댐은 무너졌다.
그러면서 2008년9월 리먼 브러더스의 파산으로 표면화된 미국발 금융 위기가 전 세계로 확산되면서 세계 경제는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제 침체를 경험하게 된다. IMF가 터진 10년만에 또다시 금융위기 둑이 무너지면서 당시 한국의 고용시장은 대졸예정자를 포함한 취업준비생 연령대 20~30대 고용률은 급락했다.
1970~80년대 독재형 근대화·산업화 정책에 필요했던 인력조달, 1997년 IMF 외환위기, 2008년 금융위기의 터널을 어떻게 빠져나왔지만 그 사이 한국의 대학은 철저히 '이윤추구의 무한한 자유', ‘경제적 자유 없이 정치적 자유 없다’는 신자유주의의 깃발을 높이 쳐들은 첨병, 신봉자가 돼 있었다. 그 관점에서 학생들을 교육시켰고, 그것이 진리라고 세뇌시켰다. 이런 상황에서 대학들은 오로지 ‘돈’이었다. 교육환경 개선, 교수연구지원, 미래 첨단학과 등을 위한 실험장비 도입 등 어떤 것 하나 돈이 필요하지 않은 곳이 없다는 대의명분을 내세워 돈, 돈 , 돈 했지만 대학들이 부르짓은 교육에 대한 투자에 대한 알량한 진정성은 수치가 대신 답했다.
한국의 신자유주의는 사회·경제적 민주주의의 심각한 후퇴를 초래하면서 부유 보다는 청렴, 독점 보다는 분배, 개인 보다는 공동체, 이러한 것을 선순환하게 만드는 민주주의를 외치다 사라진 수많은 선배들이 '함부로 금전이 주인이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던 금단의 땅, 대학’은 빌딩가 부럽지 않은 듯 치솟은 대학건물, 돈 없으면 얼씬도 못하는 법학·의학전문대학원, 취업률 좋은 학과는 살고, 취업률이 떨어지는 인문학 계열의 학과는 낙동강 오리알처럼 떨려 나갔다.
1970~80년대 독재형 근대화·산업화 인력정책, 1997년 IMF·2008년 금융위기의 시대를 김인철 후보자는 모두 경험했다. 가난했던 그에게 풀브라이트 한미교육위원단은 미국에서 석·박사를 따게 했다. 그런 은혜를 입은 김인철 후보자는 부인, 아들, 딸 모두 풀브라이트 재단의 장학금으로 유학을 했다. 공공장학재단의 은혜를 사회에 돌리지 않고, 자신의 집으로 돌렸다. 이외에도 요즘 연일 터지는 그의 비리의혹은 거의 다 돈과 관련된다. 대학의 주요보직, 총장, 대학협의회 회장, 감사원 감사위원 등등 유난히 감투욕심이 많은 그의 감투는 거의 돈과 직결된다. 신자유주의 대학 수장다운 증명서다.
대학 CEO그룹, 대학사회의 보수언론들의 계산법
다음은 대학CEO그룹과 같이 교육부장관 후보자로서는 상상 이상의 비리의혹에도 입장표명을 하지 않는 두 번째 집단은 바로 ‘대학사회의 보수언론’이다. 대학사회 군소언론에서 뭔 보수가 있고, 진보가 있냐?는 질문도 할만하지만, 대학사회 언론사들의 사세(社勢)는 비록 보잘 것 없어도 일제강점기, 6·25전쟁, 4·19 민주항쟁, 박정희 군부독재 18년, 5·18광주민주화운동, 신군부독재 12년, 보수와 진보성향 정권의 교차집권 등 격동의 한국 사회속에서 함께 울고, 웃었던 대학사회는 격동의 파도 높이만큼 의견차가 나타난다. 따라서 신문사 규모나 사세에 비해 관점도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살인범은 살인범이다. 살인범이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 없다.
'대학사회 보수언론'들은 식성 좋은 시장주의에 먹혀버린 대학의 복원의 관심이나 김인철 후보자 같이 교육자적 자질과 품행이 크게 미흡한 후보가 나와도 단 한마디 말도 하지 않는다. 김인철 후보만큼이나 매우 비교육적이고, 비도덕적이다. 한국 대학사회에 필요한 교육부장관은 어떠한 덕목을 갖추고, 어떠한 능력, 어떠한 가치관을 지닌 자(者)가 필요하다고, 김 후보자 경우는 한국 대학사회에 긍정보다 부정이 훨씬 크다는 평가를 내리지 못한다.
대학사회 보수언론들이 장관후보자의 평가는 자기역할이 아니라는 듯 꿀 먹은 벙어리노릇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김 후보자가 장관이 되는 것을 간절히 바라는 ‘대학 CEO그룹’들 생각과 보조를 맞춰야 하니, 당연히 비교육적이고, 비민주적인, 비윤리적인 교육부장관 후보자를 두고도 찍 소리못한다. ‘대학 CEO그룹’들 생각과 보조를 맞춘다는 것은 신문사의 수익적 측면만이 고려된 행위다. ‘대학 CEO그룹’들이 광고집행의 결정자이며, 여타의 수익적 내용을 대부분 관장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싫어하는 짓은 결코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또한, 대학의 돈이 돌아야 대학사회 보수언론들도 같이 좋아진다는 연결고리를 잘 알고 있다.
국무위원 중에서도 교육부장관은 남다른 도덕성과 윤리의식이 필요하듯 언론중에서도 교육관련 언론이기에 걸어야 할 남다른 정도(正道)가 있다. 대학 CEO그룹들은 잘못을 잘못이라, 비도덕적, 비윤리적을 지적하지 못하면서도 교육기관이라 자임하면서 진리, 정의에 관한 교훈을 큰 돌에 새겨 누구나가 볼 수 있는 정문앞에 버젓이 세워놓는 표리부동함도 꺼리낌 없이 자행한다. 이어 '대학사회 보수언론'은 대학에 재정적으로 지원을 많이 해주고, 대학자율화를 약속하는 후보자이면 무조건 '땡큐'다. 그런 약속을 한 교육부장관 후보자로서 적합도는 재정지원과 자율화 약속뿐이다. 대학을 신자유주의, 시장만능주의자들의 광란의 '소도(蘇塗)'를 구축하는데 부역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무엇을 위한 '재정지원'·'대학자율화'인가
김인철 후보자가 교육부장관이 되면 대학들 입장에서는 대학을 잘 아는 사람이니 많은 부분에서 대학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을 내리고 있다. 등록금 인상 자율화, 정원감축 자율화, 현행 대학평가 폐지 등이 김인철 후보자에게 대학들이 거는 항목이다. 등록금 인상, 정원감축, 대학평가 분명히 대학에게는 고통이 따랐던 대목이다. 대학들의 입장이 잘 반영된다면 모두가 기뻐 할 일이다. 그러나 대학을 잘 아는 김 후보자이기에 등록금 인상, 정원감축, 대학평가에서 좋은 변화를 기대한다는 것은 정부의 교육정책상의 문제이지, 대학을 잘 아는 김 후보자이기 때문에 가능해지는 게 아니다. 별개의 문제다.
보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동안 대학을 알았던 인사가 교육부장관을 하지 않아서 대학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던 아니지 않는가. 중요한 것은 대학을 잘 아는 사람이 아니라, 한국의 미래에 대학이 담당해야 할 역할의 중요성을 잘 아는 사람이 몇십배 더 중요하다. 또한, 김인철 후보자의 양심, 도덕, 윤리의식 수준으로는 한국 사회, 국가라는 측면에서 대학사회의 앞날을 걱정하기 보다는 대학을 시장만능주의적, 신자유주의적 발상에서 출발할 가능성이 매우 농후하다.
한국 대학사회는 김 후보자의 도덕적 수준, 윤리의식 정도를 가진 자를 교육부장관으로 수용하는 것에 아무런 거리낌도 없는, 양심, 윤리, 도덕은 내팽개치고 오로지 대학에 재정지원 많이, 자율적 권한 많이 주겠다는 후보자이면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인가.무엇을 위한 재정지원이며, 대학자율화인가. 혹여, 그들이 요구하는 재정지원, 대학자율화는 대학이 교육기관 성격보다 수익사업으로 전성기를 누렸던 그 시절을 다시 누려보겠다는 구호인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적합한 융합형 인재양성은 재정지원과 자율화만 주어지면 어떤 교육부장관이 들어오던, 말던 전혀 관계없다는 뜻인가. 무엇이 '대학CEO그룹'과 대학사회 보수언론들에게 교육부로부터 14번의 감사징계를 받아 너덜너덜해진 교육부장관 후보자의 하마평, 그에 관한 기사를 단 한줄도 쓰지 못하는가.
현재 한국 대학사회에 놓여진 시급한 과제는 하나, 둘이 아니다. 이 난제들을 풀어가려면 장관 혼자서는 결코 할 수 없다. 함께 해야 한다. 한국외대 현 학생회는 자신의 대학을 넘어 한국의 교육을 고민했다. 한국외대 직전 총장이던 김 후보자 교육부장관 지명철회를 요구했다. 이들은 “김 후보자와의 학교생활 8년은 오로지 불통 밖에 기억나지 않는다”며 당장 철회할 것을 당선인에게 촉구했다.
‘대학 CEO그룹’, ‘대학사회 보수언론’들이 진심으로 ‘한국의 미래를 위한 육영사업’과 ‘옳지 못한 대학의 심판’으로 보다 나은 사회공동체를 만드는데 동의한다면 김 후보자의 교육부장관 지명에 대해 자기 입장을 밝히는 것이 순서다. 그게 교육이고, 당신들이 있는 존재의 이유다.
뉴스 브릿지 -Ⅰ
본지 U's Line(유스라인)이 [시론] 엉터리 장관후보자에게 한마디도 말 못하는 두 집단을 올린 이유에 대한 답변은 아래 '김예슬 선언'으로 갈음한다. 김예슬은 2010년 고려대 경영학과 재학중에 대자보를 붙이고, 1인 시위를 하면서 학교를 자퇴했다.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대자보 전문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 둔다. 아니, 거부한다! G세대로 ‘빛나거나’ 88만원 세대로 ‘빚내거나’, 그 양극화의 틈새에서 불안한 줄타기를 하는 20대. 그저 무언가 잘못된 것 같지만 어쩔 수 없다는 불안과 좌절감에 앞만 보고 달려야 하는 20대. 그 20대의 한 가운데에서 다른 길은 이것밖에 없다는 마지막 남은 믿음으로.
"이제는 나의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이제 나의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이것은 나의 이야기이지만 나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나는 25년 동안 경주마처럼 길고 긴 트랙을 질주해왔다. 우수한 경주마로, 함께 트랙을 질주하는 무수한 친구들을 제치고 넘어뜨린 것을 기뻐하면서. 나를 앞질러 달려가는 친구들 때문에 불안해하면서. 그렇게 소위 ‘명문대 입학’이라는 첫 관문을 통과했다. 그런데 이상하다. 더 거세게 나를 채찍질해봐도 다리 힘이 빠지고 심장이 뛰지 않는다.
지금 나는 멈춰 서서 이 경주 트랙을 바라보고 있다. 저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취업’이라는 두 번째 관문을 통과시켜 줄 자격증 꾸러미가 보인다. 너의 자격증 앞에 나의 자격증이 우월하고 또 다른 너의 자격증 앞에 나의 자격증이 무력하고, 그리하여 새로운 자격증을 향한 경쟁 질주가 다시 시작될 것이다. 이제서야 나는 알아차렸다. 내가 달리고 있는 곳이 끝이 없는 트랙임을. 앞서 간다 해도 영원히 초원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트랙임을.
이제 나의 적들의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이 또한 나의 적이지만 나만의 적은 아닐 것이다. 이름만 남은 ‘자격증 장사 브로커’가 된 대학, 그것이 이 시대 대학의 진실임을 마주하고 있다. 대학은 글로벌 자본과 대기업에 가장 효율적으로 ‘부품’을 공급하는 하청업체가 되어 내 이마에 바코드를 새긴다.
"국가는 대학의 하청업체가 돼"
국가는 다시 대학의 하청업체가 되어, 의무교육이라는 이름으로 12년간 규격화된 인간제품을 만들어 올려 보낸다. 기업은 더 비싼 가격표를 가진 자만이 피라미드 위쪽에 접근할 수 있도록 온갖 새로운 자격증을 요구한다. 이 변화 빠른 시대에 10년을 채 써먹을 수 없어 낡아 버려지는 우리들은 또 대학원에, 유학에, 전문과정에 돌입한다. 고비용 저수익의 악순환은 영영 끝나지 않는다. ‘세계를 무대로 너의 능력만큼 자유하리라’는 세계화, 민주화, 개인화의 넘치는 자유의 시대는 곧 자격증의 시대가 되어버렸다. 졸업장도 없는 인생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자격증도 없는 인생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학습된 두려움과 불안은 다시 우리를 그 앞에 무릎 꿇린다.
생각할 틈도, 돌아볼 틈도 주지 않겠다는 듯이 또 다른 거짓 희망이 날아든다. 교육이 문제다, 대학이 문제다라고 말하는 생각 있는 이들조차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성공해서 세상을 바꾸는 '룰러'가 되어라”,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해. 나는 너를 응원한다”, “너희의 권리를 주장해. 짱돌이라도 들고 나서!” 그리고 칼날처럼 덧붙여지는 한 줄, “그래도 대학은 나와야지”. 그 결과가 무엇인지는 모두가 알고 있으면서도.
큰 배움도, 큰 물음도 없는 '대학大學’없는 대학에서, 나는 누구인지, 왜 사는지, 무엇이 진리인지 물을 수 없었다. 우정도 낭만도 사제간의 믿음도 찾을 수 없었다. 가장 순수한 시절 불의에 대한 저항도 꿈꿀 수 없었다. 아니, 이런 건 잊은 지 오래여도 좋다. 그런데 이 모두를 포기하고 바쳐 돌아온 결과는 정말 무엇이었는가. 우리들 20대는 끝없는 투자 대비 수익이 나오지 않는 ‘적자세대’가 되어 부모 앞에 죄송하다.
젊은 놈이 제 손으로 자기 밥을 벌지 못해 무력하다. 스무 살이 되어서도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모르고 꿈을 찾는 게 꿈이어서 억울하다. 이대로 언제까지 쫓아가야 하는지 불안하기만 우리 젊음이 서글프다.
나는 대학과 기업과 국가, 그리고 대학에서 답을 찾으라는 그들의 큰 탓을 묻는다. 깊은 분노로. 그러나 동시에 그들의 유지자가 되었던 내 작은 탓을 묻는다. 깊은 슬픔으로. ‘공부만 잘하면’ 모든 것을 용서받고, 경쟁에서 이기는 능력만을 키우며 나를 값비싼 상품으로 가공해온 내가 체제를 떠받치고 있었음을 고백할 수 밖에 없다. 이 시대에 가장 위악한 것 중에 하나가 졸업장 인생인 나, 나 자신임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
"말한 대로 행동하고, 행동한 대로 살겠다"
그리하여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더 많이 쌓기만 하다가 내 삶이 한번 다 꽃피지도 못하고 시들어 버리기 전에. 쓸모 있는 상품으로 ‘간택’되지 않고 쓸모 없는 인간의 길을 ‘선택’하기 위해. 이제 나에게는 이것들을 가질 자유보다는 이것들로부터의 자유가 더 필요하다. 자유의 대가로 나는 길을 잃을 것이고 도전에 부딪힐 것이고 상처 받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이 삶이기에, 삶의 목적인 삶 그 자체를 지금 바로 살기 위해 나는 탈주하고 저항하련다. 생각한 대로 말하고, 말한 대로 행동하고, 행동한 대로 살아내겠다는 용기를 내련다.
학비마련을 위해 고된 노동을 하고 계신 부모님이 눈 앞을 가린다. ‘죄송합니다, 이 때를 잃어버리면 평생 나를 찾지 못하고 살 것만 같습니다.’ 많은 말들을 눈물로 삼키며 봄이 오는 하늘을 향해 깊고 크게 숨을 쉰다.
이제 대학과 자본의 이 거대한 탑에서 내 몫의 돌멩이 하나가 빠진다. 탑은 끄덕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작지만 균열은 시작되었다. 동시에 대학을 버리고 진정한 大學生의 첫발을 내딛는 한 인간이 태어난다. 이제 내가 거부한 것들과의 다음 싸움을 앞에 두고 나는 말한다. 그래, “누가 더 강한지는 두고 볼 일이다”.
2010년 3월 10일 김예슬
고려대 경영학과를 자퇴하며
뉴스 브릿지 -Ⅱ
《촛불혁명》 일본판 출간기념으로 2020년 2월 3일 일본 국회에서 강연을 한 김예슬 나눔문화 사무처장. 이 자리에서 김 사무처장은 “한국에서는 1997년 IMF 외환위기와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소수의 특권층이 부정과 부패와 독점으로 부를 증식하는 동안 다수의 민중들은 실업과 부채와 도산으로 내몰렸다. 해마다 ‘부자 나라’가 되어가는데, 가난한 개인은 늘어났다. 다들 고학력의 ‘비싼 인간’이 된 반면, 좋은 일자리는 줄어들었다. 풍요의 시대에 상대적 박탈감은 더 예리하게 파고들었다.”면서 “지난 반세기 넘게 한국사회 제1의 가치는 ‘경제 성장’이었다. 그러나 촛불혁명으로 ‘경제보다 정의’라는, ‘성장보다 성숙’이라는 전환이 시작됐다. 공정과 공평이야말로 좋은 경제의 토대다. 촛불혁명의 요구인 ‘Fair & Care’, ‘공정과 복지’를 힘있게 실현해나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또한, 이제 예전과 같은 고도성장의 시대는 끝났다. 그에 맞는 새 로운 사회체제와 삶의 양식과 우리의 가치관을 세워나가는 것이 보다 근본적인 과제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