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대 건학 의미 헤아려 구성원들은 역사에 오점 남기지 말아야
'국민의 대학' 역할 강조한 해공의 창학정신
[U's Line 유스라인 박병수 편집국장] 해공(海公) 신익희 선생(1894년 6월 9일~1956년 5월 5일)은 상해 임시정부에서 독립운동으로 삶의 절반을 보냈고, 해방후에는 투철한 헌법주의자로서 국회의장을 지냈다. 그런 이유로 해공의 동상이 여의도 국회의사당내에 모셔져 있다. 그가 국민과 국가를 위해 ‘국민의 대학’을 세워야겠다면서 창학한 대학이 오늘날 ‘국민대학교’이다. 국민대학교는 해방후 첫 민간대학으로 올해로 75년 역사를 맞았다.
해방후 역사의 소용돌이속에서 임시정부 요원들의 충정으로 건학된 국민대학교가 또다른 역사의 소용돌이 한복판에 놓여 있다. 다름아닌, 윤석열 국민의 힘 대선 예비후보 부인 김건희 씨의 불량 박사논문에 대한 연구윤리 검증을 회피해 버리면서 스스로 걷잡을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에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 여론은 국민대학교의 '논문검증 시효경과 조사불가' 라는 발표를 정치와 야합한 얕은 수사(修辭)에 불과하고, 집단이성의 대학이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고 말았다며 개탄했다. 한 국회의원은 국민대의 이번 발표를 "국민대 75년 역사를 시궁창에 쳐넣었다"고 까지 힐난했다.
특히, 여론이 들끓은 데에는 논문검증을 회피한 명분으로 부칙규정의 시효경과를 국민대학교는 내세웠지만 연구윤리 위반제보 논문은 기한과 관계 없이 조사를 해야 한다고 부칙 상위개념인 본 조항에 분명히 명시돼 있는데도 이를 건너뛰는 자의적 해석까지 동원했다는 점이다. 조사착수 2개월여만에 기껏 발표한 검증내용이 이 같은 꼼수로 드러나자 민교협, 사교련 등 교수단체들은 성명서를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시효경과’ 검증포기는 낯을 들 수 없는 부끄러운 일
교수단체들은 "학위논문은 시효에 따라 폐기되거나 소멸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학위를 받은 이의 학적 언행과 제도적 자격에 대해 보장을 해주는 자격증이자, 후속연구를 위한 중요한 선행연구다. 특히, 박사학위는 해당분야의 최고 전문가로서 학생들을 지도하고 가르칠 수 있다는 자격증이다. 또 학위를 배출한 대학과 심사교수뿐 아니라 사회의 문화적·학술적 역량을 보여주는 지표다.
그럼에도 국민대학교가 유력 대선후보 부인의 학위논문 부정의혹 검증을 '5년 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포기한 일은 대학의 구성원이자 연구자로서 차마 낯을 들 수 없는 부끄러운 일이다."라고 질타했다. 또한, 이럴진대 누가 대학이 학문과 교육의 장이라는 것을 믿겠으며 대학의 가치를 인정하겠는가? 그런 중차대한 책임을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시효만료를 핑계로 국민대 스스로가 책임을 방기해 버렸다고 일갈했다.
국민대학교 담장 넘어서는 이번 국민대학교의 처사가 반교육적, 반사회적, 반윤리적이라는 규탄과 질타의 목소리가 넘쳐나는데도 학교내에서는 발표 6일이 지나도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쥐 죽은 듯 침묵으로 일관했다. 저마다 각기 다른 생각을 가진 2만여명의 구성원이 살아가는 학문집단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국민대 학교 구성원들은 아무런 의견을 내지 않았다. 항간에서는 학교측에서 함구령을 내려 구성원들이 아무 표현을 못하는 것이라며 대학 전체를 초등학생 수준으로 낮춰 보는 소문도 돌았다.
‘국민대 교수회’는 왜 조직됐나
그러다 학교측의 조사불가 발표가 1주일이 되던 날 아침, 국민대학교 5명의 교수가 피켓을 들고 정문앞에 섰다는 소식이 들렸다. 이들의 피켓에는 '논문의혹 재조사'를 촉구하는 문구가 적혔다. 피켓시위에 나선 한 교수는 "학생들 보기 창피해서 더 이상 앉아 있을 수 없었다"는 자괴감에 억눌린 말을 꺼냈다. 그러면서 '국민대 교수회'라는 조직은 전체 교수가 모두 가입된 대학 최대 교수조직이지만 회장의 성향에 따라 활동방향이 좌우되고 있다면서 회장과 집행부의 철학부재와 책임방기가 국민대학교 전체 구성원, 동문들을 자괴감에 몰아 넣었다고 분개했다.
현재 이 대학 교수회 회장 H교수는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을 지낸 짙은 보수성향 인물로서 학교의 조사불가 결정에 동의하면서 각계의 질타가 빗발쳐도 국민대학교 교수회에서는 의견개진 의사가 전혀 없다고 밝혔다. 또한, 이 대학 직원노조는 임금협상과 적체된 인사 건 해결을 요구하며 노조 현안문제에만 전념하면서 논문사태에 대해서는 입뻥긋도 하지 않았다. 총학생회 또한 집단적 의견도출을 이끌어내는데는 학교사회의 관심도나 성향이 아니라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이러고 보니 국민대학교 3주체의 현실은 또다시 논문검증 회피가 발생한다하더라도 나서서 잘못을 지적할 주체가 없는 무주공산(無主空山)의 학교가 되는 셈이다.
교육상임위 국회의원들은 국민대학교의 조사불가 결정을 학문적 판단이 아니라, 정치적 이해관계가 개입됐다고 보고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유은혜 교육부장관 상대로 국민대 논문검증 불가에 대해 조치를 물었고, 장관은 교육부 시효삭제 훈령이 발동된 상황에서 국민대의 검증시효 적용은 적절하지 않다며 검증 계획서를 받겠다고 밝혔다.
국정감사에서 ‘검증회피’ 샅샅이 밝혀야
교육부가 논문검증 계획서를 받겠다는 것에 한 가지 더 추가하고자 한다. 10월 1일부터 교육부부터 시작하는 올해 국정감사에 국민대 총장과 연구윤리위원회 위원장 2인을 증인채택해 어떻게 불의가 핑계로 무마하려고 했는지 샅샅이 뒤져야 한다.
본 조항에서 '연구부정행위 제보에 대해서는 시효와 관계없이 조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고 명시돼 있는데도 하위규정인 부칙을 적용해 '논문 시효경과 검증조사 불가'라는 연구윤리위원회 최종의견이 어떻게 도출됐는지, 그 논의과정은 어떻게 진행됐는지 반드시 관계자 증언이 공개돼야 한다.(*김건희 씨 국감 증인채택은 문체관광위 소속 김의겸 열린민주당 의원 신청)
대학의 사명은 '연구'와 '교육'이다. 굳이 이들 단어 앞에 붙어 있지 않지만 '진실된' 이라는 수식어가 괄호에 숨어 있다. 연구윤리와 관련해서 시기와 관계없이 언제든지 논문은 검증해야 하는 이유는 석·박사 학위논문은 국회도서관에 항시 공개돼 있고, 논문이 한 번 쓰이면 다른 후속논문을 쓸 때 또다른 사람들이 인용하게 된다. 한 논문을 인용하고, 그 논문을 가지고 이어 발전시켜 나가기 때문에 학위논문은 연구 전체 차원에서 공적인 국가적 자원이며, 따라서 공적 관리가 필요하다.
또한, 부당한 논문은 연구윤리 측면에서도 문제지만 학문발전이나 연구 생태계를 위해서도 시효가 지났다고 해서 몇 년 전 논문은 되고, 몇 년 후 논문은 검증 안 해도 되는 자의적 해석에 기준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부정을 막기 위함이 교육부가 2011년에 훈령을 개정한 이유다.
해공 건학이념, ‘최고교육을 위한 학문연구’ 따라야
75년 전 해공 선생은 국민대학교를 창학하면서 3가지 건학이념을 내세웠다. 그중 하나가 '대학 본연임무는 아카데미즘(학문연구)'이다. 국민대학교 측은 여기서 해공 선생이 주창한 아카데미즘은 학술의 심오한 연구에 그치는 것만이 아니라 '최고 교육의 보편화'를 통해 건전한 정신과 이상을 배양시키고자 한 것이라고 해설까지 달아놨다.
국민대학교는 설립자의 건학이념을 존중해야 할 책무가 따른다. 또한, 아무리 물질과 황금이 정신세계 노략질을 대놓고 하는 세상이라고 해도 대학이 지켜내야 할 것이 있다. ’진리‘, ’자유‘, ’정의‘라는 금문자이다. 대학이 이것을 지켜내지 않으려 한다거나, 지킬 힘이 없다면 서둘러 학교의 문을 닫는 편이 훨씬 더 진리에 가깝고, 정의에 편에 서는 한 방법이다.
국민대학교는 왜 75년을 이어 왔고, 무엇을 도출하기 위해 오늘도 교수는 강의를 하고, 학생은 수업에 열중하는지를 엄중히 돌이켜 볼 때다. 그래서 이제라도 국민대학교 구성원은 총장과 연구윤리위원회 위원장의 국감증인으로 채택되도록 힘을 모을 일이다.
국민대학교의 창학은 더 이상 외세에 국권을 뺏기지 않겠다는 다짐속에서 역사의 진실을 지켜내려는 선열의 한(恨)이 서려 있다. 그래서 '국민의 대학'으로서 역할을 기대하며 해공 선생 및 임시정부에서 국민대학설립준비위원회를 발족해 해방 바로 이듬해에 국민대학교를 태동 시켰다.
중국 상해 임시정부에서 참혹한 시간을 보내고 되찾은 나라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한 일이 후학양성이었고, 그 방안으로 대학을 만들자는 의견으로 집약됐다. 백범 김구 선생이 국민대학설립기성회위원회 고문을 맡았고, 임시정부 내무장관인 신익희 선생이 대학 건립과정에서 생긴 궂은 일을 마다 않았다. 그래서 국민대학교 초대 총장으로 추대됐다. 살아있는 국민대학교의 역사이다.
이번 김건희 씨 불량논문을 어처구니 없는 이유를 내세워 조사불가라는 황당한 결정을 한 국민대학교 본부의 행위는 크게 잘못 됐다. 역사와 정의를 배반하는 행위다. 옳지 않음을 알았을 때, 술수를 확인 했을 때는 결코 침묵하지 않는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임시정부 요원들은 조국으로 돌아오자마자 '국민의 대학', 국민대학교를 세웠다. 이제라도 국민대학교 구성원들은 부디 이성회복으로 부디 역사앞에 부끄러운 일을 저지르는 일은 없도록 각성과 분발을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