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텍이 정시모집 30% 확대를 거부하겠다는 이유

김도연 총장 "모든 대학에 획일적 수치 주고 늘리라는데 동의 못 해" 박병수 기자l승인2018.08.21 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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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도연 포스텍(포항공대) 총장은 교육부의 정시모집 30% 확대를 정면으로 거부하고 나섰다. 이유는 정시모집은 창의적 인재, 미래지향적 인재를 선발하는 툴로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또한 오랜 시간을 들여 만들어낸 포스텍만의 학생선발 기준을 교육부가 일괄적으로 수정하라는 것은 시대 흐름으로도 맞지 않다고 제기했다.

[U's Line 유스라인 박병수 기자]김도연 포스텍 총장(66·사진)은 교육부가 발표한 정시모집 30% 권고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학교방침을 19일에 서둘러 밝혀왔다. 이런 뜻을 밝힌 날이 일요일이었지만 이마저도 늦었다는 듯이 느낌이 강하다. 교육부가 권고안을 17일(목)에 밝혔으니 포스텍은 바로 이튿날인 금요일에 긴급회의를 했거나, 정부 권고안을 이미 예견하고 정시확대 수용불가 방안을 이미 세웠을 가능성이 높다.

이렇듯, 포스텍이 교육부의 정시확대 방안을 거부하겠다는 입장은 의외로 간단하다. 쉬운 수학능력고사로는 우수학생을 분별할 변별력이 없다는 이유다. 시험으로서 나름 가치가 크게 부족하다는 뜻이다. 여기다 2018학년도부터 영어절대평가 도입으로 수능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은 더 해졌다.


‘어려운 시험’, 곧 ‘좋은 시험’이라는 등식은 아니라 포스텍 시각에선 포스텍 나름의 인재선발을 하기에는 수능은 역부족이라는 주장이다. 포스텍은 2017학년도부터 100% 수시모집으로만 신입생을 선발해왔고, 2010학년도 입시에서도 입학정원 300명 모두 입학사정관제(현 학생부종전형)로 뽑았다.

포스텍은 고교 학교장 추천과 면접위주로 선발한 학생이 대학 수학능력시험성적만으로 선발한 학생보다 대학에서 학업성취도가 더 높다는 것에 확신을 갖고 있다. 이런 확신으로 1단계 전형은 서류평가 100%, 2단계 전형에서는 100% 면접평가를 통해 선발한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은 전형요소로 사용하지 않고, 최저학력기준도 없다.

포스텍이 수능점수가 아니라 서류전형과 면접만으로 수학능력을 가리는 것이 낫다는 결론을 얻었던 데에는 나름 시간(時間)과 공(功)을 들인 덕이다. 그 결과, 대학 수학능력시험 점수보다는 고교내신 성적이 좋은 학생이 대학에서 학업 성취도가 높다는 것을 통계로 밝혀냈다.

또한 포스텍은 학업적으로 최우수 집단이 지원하는 대학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이 대학에서 수학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있다고 판단되면 더 이상 순위를 매기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는 것도 파악했다. 포스텍 관계자는 입시설명회에서 “포스텍 1단계에 통과한 학생이라면 누구든 수학(修學)적 부분은 충분히 해낼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이렇다보니, 김 총장은 정부가 30%로 정시확대를 하지 않는 대학에게는 고교교육 기여대학지원사업의 재정지원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반(半) 압박도 마다 않고, 정시모집을 확대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대학 입장에선 매년 8억~9억원 받던 재정지원이 끊어질 경우 타격이 크지만, 그런 지원을 못 받더라도 어쩔 수 없다"며 "포스텍이 10여년간 축적한 수많은 입시 노하우를 정부가 이렇게 하루아침에 부정해선 안 된다"고 항변했다.

김 총장은 최근 대입 개편안 논란에 대해서도 "정부만 아니라 한국 사회 전체가 반성해야 할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지선다형 객관식 문제중 운 좋게 몇 개 더 맞으면 '대박'이고, 운 나빠 몇 개 더 틀리면 '쪽박' 나는 수능제도가 정말 공정한 것인지, 학생부 기재 동아리·수상 개수를 제한하고 자기소개서 분량을 줄이고 추천서를 폐지하면 '깜깜이 전형'이란 오명이 정말 없어지는 것인지 큰 의구심과 제대로 된 해결책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 총장은 "입시에 활용할 수 있는 자료를 없애고 줄일수록 공정해지는 게 아니라 대입을 진짜 '깜깜이'로 만드는 일"이라고 충고했다.

김 총장은 "정부가 '특정 사교육을 줄여야 한다'는 목표를 갖고 정시모집 비중이나 자소서 분량 간소화 같은 세세한 제도개선에 매달리면 사교육은 그 새 제도에 맞춰 계속 모습을 바꿔나갈 것"이라며 "궁극적으로는 대학에 학생 선발권한을 줘야 공정성 문제, 옆자리 친구와 내신 경쟁을 벌이는 불필요한 입시 경쟁구도를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포스텍에는 미래지향적 학생선발에 관한 유명한 일화가 있다. 포스텍은 지난 2010학년도 입시에서도 정원 300명 모두를 입학사정관제(현, 학생부종합전형)으로 뽑았다. 2009년 9월 중순 포스텍에 경기도 일반계 고등학교에 다니는 한 남학생의 수시모집 지원서류가 접수됐다. 이 학생은 내신 전 과목이 1등급일 정도로 성적이 우수했다.

하지만 지원서류를 꼼꼼히 검토하던 입학사정관들은 혼란에 빠졌다. 이 학생을 ‘골치 아픈 천재’로 평가한 교사추천서 때문이다. ‘머리는 좋아 천재형이지만 성격이 삐뚤어져 있다’ ‘어려운 문제를 들고 와 일부러 골탕 먹이는 등 교사를 못살게 군다’ 등 내용이 적혀 있었다.

또 생활기록부에는 ‘이기적이다’는 표현까지 적혀 있었다. 입학사정관들은 이 학생을 뽑아야 할지를 두고 설전을 벌였다. “성적이 좋으니까 뽑아야 한다”는 주장과 “학교생활에 제대로 적응하기 힘들 것”이라는 주장이 팽팽했다. 결국 2시간여의 회의 끝에 탈락시키기로 결정했다. 한 입학사정관은 “해당 고교에 직접 전화까지 했는데 1학년 담임교사가 비슷한 말을 하더라”며 “오죽하면 교사가 추천서에 저렇게 썼을까 싶었다”고 말했다. 그 입학사정관은 또 “포스텍은 전원 기숙생활을 하는데 남을 배려하는 소양이 없으면 곤란하다고 판단했다”고 덧붙였다.

입학사정관 심사를 거친 1단계 결과는 승인권을 가진 교무위원회로 올라갔다. 입학위원을 겸하는 교수가 회의에서 1차 전형에서 있었던 몇 가지 사례를 소개했다. 해당 학생의 탈락 건이 소개되자 교수 사이에선 ‘골치 아픈 천재’에 대해 우호적인 의견이 많이 나왔다. 한 교수는 “우리도 학교 다닐 때 엉뚱한 점이 많아 여러모로 교사들을 골치 아프게 하지 않았느냐”고까지 말했다. 결국 교무위는 1차 전형 결과를 뒤집어 해당 학생에게 2차 면접 기회를 주기로 했다.

입학사정관들은 반발했다. 하지만 “앞으로 입학위원회의 결정을 교무위가 번복하는 일이 다시는 입학과 관련된 사항을 결정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전달하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우여곡절 끝에 1차를 통과하게 된 이 학생은 2단계 전형의 잠재력 평가면접과 수학·과학 심층면접에서 뛰어난 평가를 받았다. 면접 당시 자신의 성격적인 부족함에 대해서도 “고치려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 학생은 2009년 11월 6일 최종 합격 통지서를 받아들었다.

당시 입학 관계자는 “4년 동안 이 학생의 발전정도를 지켜보면 추후 유사한 학생을 뽑을지 말지를 가늠할 수 있었던 잣대 같은 것이었다”며 또한 “당시 입시는 전국 4년제 대학이 입학사정관제로 선발 확대일로 상황이었기 때문에 단순히 서류로만 인재를 판단하기보다는 다각적인 평가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었다”고 회고 했다.

지금 한국사회는 대입 개편안으로 매우 혼란스럽다. 올바른 답을 찾아가기 위한 혼란스러움이라면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이 혼란스러움이 학생이 스스로 진로를 발견하고, 학교는 학생의 창의성을 발견하고, 이 학생이 추후 만인(萬人)을 위한 사회인으로 발전하도록 독려하는 과정과 거리가 먼 대입 개편안이라면 아무짝에 쓸모가 없을 것이다.

한국 사회는 대학 입학연령의 인구절벽이라는 난제에 부딪혀 있다. 개별 대학의 학생선발 자율을 충분히 줘 대학선발에 창의성을 발휘할 때가 왔다. 포스텍 김도연 총장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한국의 대학은 벚꽃 피는 순서부터 문을 닫을 것”이라고 말이다. 대학이 입학자원 부족으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에서 정시 30%가 뭐 그리 중요한 상황인지 뒤돌아 볼 일이다.

훗날 “중요한 건 창의적 인재 선발이었어, 바보야”라는 후대(後代)의 말이 들리는 듯하다.


박병수 기자  pbs1239@uslin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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