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실대 등 레지던스홀 빈방 수두룩...

대학 기숙사는 지방에서 서울로 유학 온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마련된공간이였다. 방값이 싸다는 최고의 장점에다 같은 처지의 선후배들과 함께 지내며 외로움을 달랠 수 있다는 점까지. 기숙사는 그렇게 우리네 젊은이들을 키워냈다.

하지만 요즘 대학 기숙사는 옛 정취를 잃어버린 지 오래다. 소박한 기숙사 식당과 매점이 있던 자리는 어느새 외국프랜차이즈 점포들이 차지했고, 건물을 새로 지었다는 이유로 기숙사 입사비는 가파르게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실제로 최근 몇 년 사이 기숙사 건물을 새로 지은 대학들은 입사비 올리기 경쟁을 펼치고 있다. 민간자본을 끌어들여 지은 신축 기숙사의 입사비는 기존 기숙사보다 적게는 2배, 많게는 3배까지 비싸다.

건국대 '쿨하우스'는 헬스장·커피전문점·미용실·제과점·편의점·택배사무소까지 갖춘 고급형 기숙사로서 1개 학기(4개월) 입사비(이하 식비 포함)가 1인실 245만원, 2인실 175만원에 달한다. 고려대 '프런티어관' 입사비는 무려 282만원으로, 구관 153만원의 2배 가까이 된다.

학기당 입사비 40만원대 기숙사에서 지내던 숭실대생들도 지난해 '레지던스홀'이 등장하면서부터 주거비 압박에 상당한 부담을 느끼고 있다. 입사비는 1인실이 199만원, 2인실이 125만원 수준이다.

서강대 '곤자가 국제학사'의 입사비도 185만원(2인1실)으로, 구 기숙사인 벨라르미노 학사의 105만원(4인1실)에 비해 80만원이나 비싸졌다.

특히 이들 대학의 기숙사비가 비싼 것은 민간자본을 유치한 데 따른 대가를 학생들이 치루고 있는거다. 이들 대학 대부분이 BTO(Build-Transfer-Operate) 방식으로 기숙사를 지었다. 민간자본이 기숙사를 지어 학교에 기부채납한 뒤 10~20년간 운영권을 보장받는 방식이다. 기숙사 수용인원을 늘리려는 대학과 기숙사업으로 수익을 올리려는 민간자본의 의도가 맞아떨어진 셈이다.

문제는 민자 기숙사가 세워지면 입사비 절반 이상이건축비원금 회수와 민간자본 이자상환에 쓰이게 된다는 점이다. 신식시설 탓에 관리비는 관리비대로 오르고 민간자본도 자체적으로 본전찾기에 나서는 통에 입사비는 이래저래 오를 수밖에 없다.

민자 기숙사를 둔 한 대학의 관계자는 "옛 기숙사보다 1인당 이용면적이 넓고 난방비 등 유지관리비용도 더 많이 들다 보니 기숙사비를 다소 올릴 수밖에 없었다"며 "기존 기숙사와 달리 각방에 화장실과 샤워실이 설치된 점을 감안하면 입사비가 그렇게 비싸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해명했다.

또 다른 대학 관계자는 "학생들의 부담을 줄이기 위한 방안을 고심 중이지만 운영비가 올라가는 바람에 입사비를 안 올릴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심지어 일부 관계자들은 기숙사비가 비싸다는 지적에 "이 가격에도 학생들이 다들 못 들어와서 난리"라며 코웃음을 치기도 했다.

학교 측의 안이한 현실인식에 학생들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고명우(25·철학과) 서강대 총학생회장은 "곤자가 국제학사 운영주체인 기업이 입사비와 입사기준을 자의적으로 정하고 있다"며 "기업이 정한 입사기준에 따르면 1순위 입사자는 장거리 통학자가 아니라 오랫동안 돈을 낼 수 있는 부잣집 학생"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수익을 목표로 운영되다보니 입사비 자체가 굉장히 비싸고, 식비도 의무적으로 내도록 정해져있어 불합리하다"며 "민자유치 계약에 묶인 학교가 학생들을 대변하지 못하는 상황이라 학생들 스스로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다"고 한탄했다.

고려대 프런티어관에 거주하는 김모(20)씨는 "기숙사는 단순한 숙박시설이 아니라 지방에서 올라온 학생들을 위한 최후의 보루인데 지금 살고 있는 이 기숙사는 영리 목적 숙박시설이라는 느낌이 강해 불쾌할 때가 많다"고 털어놨다.

고려대 구관에서 지내는 전모(20·여)씨는 "기숙사의 취지는 학생들이 공부하는 데 지장이 없도록 주거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이라며 "그런데 각 대학마다 민자 기숙사들이 속속 들어서면서 취지가 퇴색하고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숭실대 레지던스홀에 사는 한 학생도 "(현 입사비 수준은)중산층 이상 출신 학생들만 입사하라는 것밖에 안 된다"며 "비싼 입사비를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에 지금도 기숙사에 빈방이 넘쳐난다"고 비판했다.

학생들뿐만 아니라 시민단체들도 민자 기숙사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안진걸참여연대 민생팀장은 "적립금을 무려 10조원씩이나 쌓아놓은 채 민자 기숙사를 짓는다는 발상 자체가 잘못됐다"며 "어마어마한 교육비 대란이 벌어지고 있는 현 상황을 감안할 때 정말 너무한 처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안 팀장은 "돈 있는 학생들만 수용하는 민자 기숙사는 최악의 선택이자 재앙"이라며 "현재 민자 기숙사를 지으려는 대학들은 당장 계획을 중단해야하고, 이미 지은 대학들도 대책을 세워야한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또 "기숙사에 들어가지 못한 학생들은 결국 지역 주택시장으로 쏟아져 나오게 되고 그러면 학생들이 신혼부부나 저소득층과 부득불 방 구하기 경쟁을 펼치게 된다"며 "지자체와 대학, 교육당국이 나서서 공공 기숙사(절반에는 학생들이 입주하고, 나머지 절반에는 대학 인근 주민들이 입주하는 주거 형태)를 지으면 학생들의 부담을 줄이는 동시에 주민들을 전세대란으로부터 구제할 수 있다"고 대안을 제시했다.

정부와 기업에 도움의 손길을 요청하는 학생들의 목소리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신축 민자 기숙사에 지원했다 탈락했다는 한 학생은 "기업들이 캠퍼스 내인기학과 건물을 짓는 데만 몰두할 게 아니라 가난한 학생들을 위한 기숙사를 짓는 데 관심을 가지고 기부를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고려대생 황모(20)씨도 "학생들이 집 걱정하지 않고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면 좋겠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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