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수학회, 미·영·호주·싱가포르·일본 5개국 대입수학 분석

"다른 나라와 달리 한국은 수학교육 악화…교육부 방침 철회해야"

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에서 자연계 수업생들이 볼 '수학 가형' 출제범위에서 빠지게 된 '기하'(옛 과목 이름 '기하와 벡터')의 내용이 일본에서는 이과는 물론 문과 대입시험 출제범위에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학 교과과정에서 이미 우리나라 이공계 수험생들은 일본의 문과 고교생들보다 수학을 적게 배우고 대학에 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기하가 자연계 수능에서마저 통째로 빠져 버리면 4차 산업혁명 대응 등 미래 국가경쟁력에 타격이 클 것이라는 게 과학기술계의 지적이다.

대한수학교육학회가 발간하는 ‘수학교육학연구’ 2016년 5월호에 실린 '대학입학 수학 시험 국제 비교 분석 -- 미국, 영국, 호주, 싱가포르, 일본' 논문에 따르면 도쿄대·교토대·와세다대 등 일본 주요대학들의 문과 지원 수험생들은 '수학Ⅱ'와 '수학B'를 치러야 한다.

2015년도 일본 교토대 문과 대학별고사 수학 문항을 한국어로 번역한 것. 우리나라 교육부가 이과생들이 치르는 '수학 가' 출제범위에서도 제외키로 한 기하 영역의 공간벡터 방정식 문제가 문과 문제로 출제됐다.

이 중 수학Ⅱ에는 고차방정식, 지수·로그·삼각함수, 삼각함수의 덧셈정리, 미적분 등이, 수학B는 점화식과 수학적 귀납법 등 심화 수준의 수열 관련 내용과 벡터와 도형, 공간벡터가 포함돼 있다.

특히 기하 영역에 속하는 내용인 벡터와 도형, 공간벡터는 일본에서는 이과생은 물론 문과생도 공부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2015 개정 교육과정부터 이과생 일부가 듣는 진로선택과목 '기하'에서조차 빠졌다.

논문 저자들은 "우리나라의 수학교육과정은 1997년 제7차 교육과정부터 2007, 2009, 2015 개정 교육과정을 거치면서 학습자의 부담 완화라는 명목하에 지속적인 내용 경감이 이루어져 왔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특히 일본에서는 이과는 물론 문과에서조차 우리나라 자연계열 학생들보다 많은 (수학) 내용을 공부하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구체적으로는 우리나라는 복소평면, 극좌표, 회전체의 부피, 점화식으로 표현된 수열의 일반항 구하기, 두 수열의 관계로 표현된 수열 등을 삭제했으나, 이런 내용이 일본 대학별고사에서는 지속적으로 출제되고 있다.

논문은 "미국의 SAT 시험, ACT 시험과 일본의 센터시험은 수능보다 기초적인 내용 영역을 출제범위로 하고 있지만, 이를 보강하는 AP코스 시험이나 대학별고사에서는 우리보다 높은 수준의 내용을 다루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영국의 A-레벨, 호주의 VCE, 싱가포르의 GCE 시험도 기초 수준의 일부 과목을 제외하고는 모두 우리나라보다 심화한 수준의 수학을 다룬다"고 설명했다.

2014년도 싱가포르 대입시험인 GCE A-레벨 수학 H2 시험에 출제된 문항의 번역본. 한국에서는 대학 과정인 매클로린 급수 관련 내용이 출제됐다.

이향숙 대한수학회장은 "정보통신기술(ICT) 기반의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는 신기술은 모두 수학을 핵심 기반으로 하고 있어서, 수학 교육을 강화하는 것은 미래 국가경쟁력을 위해 더욱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다른 나라들은 수학 교육과정을 더 심화시키고 범위를 더 늘리는 방향으로 개정했는데 우리나라는 거꾸로 약화하는 방향으로 계속 가고 있다"며 교육부의 방침 철회를 촉구했다.

앞서 지난 19일 교육부는 공청회에서 '수학 가형' 출제범위에서 기하를 제외하는 내용의 '2021학년도 수능 출제범위안'을 발표한 바 있다.

올해 고1이 되는 학생들이 치를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에서 이과 학생들이 주로 보는 수학 가형에서 기하가 제외되고, 문과생이 보는 수학 나형의 출제범위는 삼각함수 등이 포함된다. 이과 수학은 기존보다 수능 출제범위가 줄고 수학포기자가 많은 문과생의 출제범위가 늘어나게 된다. 지난 19일 수능 출제범위를 연구를 진행한 정책연구진이 발표한 공청회 안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앞서 수능 출제범위를 연구한 정책 연구진은 수학 가형의 출제범위는 수학Ⅰ·미적분·확률과 통계를 넣고 기하를 빼는 안을 제안했고, 이 안으로 수능 출제범위가 최종 결정됐다. 교육부는 2015 개정 교육과정으로 기존에 포함된 ‘기하와 벡터’ 가운데 기하는 주로 3학년 때 배우는 심화과목인 ‘진로선택과목’, 벡터는 과학고 등에서 배우는 ‘전문교과과목’으로 이동해 학생 부담 완화 측면에서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기하’ 과목이 모든 이공계 학과의 필수 과목으로 보기 곤란하며, 대학이 모집단위별 특성에 따라 필요할 경우에 학생부에서 기하 이수 여부를 확인해 가산점 여부를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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