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노벨 물리학상은 중력파 관측장치를 발명하고 이를 이용해 중력파를 검출하는 데 기여한 과학자들에게 돌아갔다. 수상자 발표가 난 다음날 킵 손 박사와 배리 배리시 박사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기자중 한 명이 100년쯤 뒤 중력파가 실용화돼 우리 삶을 바꿔 놓을 수 있겠냐는 질문을 했다. 킵 손 박사는 중력파를 만들어 내려면 어마어마한 질량을 흔들어 댈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실용화는 불가능할 것이라고 대답했다. 보통 연구비를 더 받기 위해 작은 실용성이라도 침소봉대해 장밋빛 미래를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는 솔직히 간단명료하게 말했다. 실용화가 안 돼 결코 돈은 안 될 것이라고. 그러나 그는 한 분야에 평생을 받쳤다.

노벨상을 받은 다른 수상자들도 그렇지만 특히 킵 손 교수가 평생을 중력파 연구에 헌신할 수 있었던 것은 누구도 검출할 수 있으리라고 믿기 어려워 막막했을 때 신념을 지키며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계속할 수 있게 한 사회적 풍토가 크게 한몫 했으리라 본다.

지난 9월 일본 육상선수 기류 요시히데가 100m 단거리 경주에서 9초98의 기록을 세우며 순수 동양인으로는 최초로 ‘마의 10초’ 벽을 깼다. 지난해 리우올림픽에서 가장 놀라웠던 장면중 하나가 육상 400m 남자계주에서 아시아의 일본이 은메달을 땄을 때다. 육상은 신체 조건상 흑인이 유리하고 경기 특성상 가난한 나라가 잘한다고 판단해왔다. 별다른 장비나 기술 없이 그냥 달리기만 하면 되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아시아의 최고 부자나라, 일본이 육상에서 놀라운 성과를 보이는 이유가 무엇일까? 기류 요시히데는 육상 동호회 출신인데, 원래는 초등학교 시절 축구 골키퍼로 운동을 시작했다. 어린 시절 공보다 더 빨리 뛰는 모습을 보고 육상을 권해서 세계적인 육상선수가 됐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은 정반대이다. 달리기에 소질을 보이는 육상 꿈나무를 축구선수를 하라고 부추긴다. 투포환 선수를 지나가던 야구감독이 눈여겨보고 투수로 스카우트하기 위해 눈독을 들인다. 모두들 돈이 된다는 인기종목으로만 몰린다. 과학고를 나와 화학이나 생물학을 전공한 영재들은 ‘사’자는 붙는 직업인 의과대학에 몰려 한국의 기초과학은 늘 제자리다. 학문이던, 운동이던 한 사회가 건강하고, 모두가 존중되는 세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다양성의 가치가 이뤄져야 하지만 대한민국에서는 시쳇말로 잘 나가는 게(돈이 되는 게) 아니면 바로 가치가 없는 것으로 결론이 난다.

대한민국의 중·고등학교 전교 1등의 꿈은 모두 똑같다. 문과 전교 1등은 법대를 가고, 이과에서 공부를 잘하면 의대를 가는 게 마치 정석으로 돼 있다. 그것이 손해나지 않고 잘 사는 방법이라고 배운다. 물리학, 천문학에 관심 있다는 자녀에게 부모는 인생 편안히 살려면 엄마 말 들으라고 싸움 하듯이 자식의 꿈을 뜯어 말린다. 이런 결과로 돈이 되는 분야는 경쟁이 갈수록 치열하고, 경쟁이 치열할수록 승자와 패자 간 격차는 뚜렷해진다. 부모의 강압으로 의과대학에 도전했다 실패한 수험생은 재수, 삼수를 거쳐 기어이 의과대학을 들어가고 만다. 그 수험생에게는 세상의 직업은 오로지 의사 하나 밖에 없는 꼴이다.

이웃나라 일본은 해마다 노벨상을 수상하는데 왜 우리나라는 나오질 않느냐고 따질 일이 아니다. 노벨상은 학문적 업적과 연구의 창의성에 무게를 두는 상이다. 대한민국과 같이 돈이 되는 것이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세상 관점으로는 절대로 우리나라 육상선수가 일본 선수를 앞지르는 사건은 일어나지 않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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