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미화원 양춘단이 바라본 한국의 대학은 “반칙의 쓰레기가 넘쳐나는 기업”

희미한 형체지만 분명 살아 있기는 한데 말을 걸어오지는 않고,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다들 밟고 다니니…. 나로구나.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절대 나이 들지 않을, 영원히 젊고 배운

사람들로만 가득 차 있을 이곳에서 쓰레기 봉지를 어깨에 멘 채 복도를 오가는 양춘단은 벽에, 바닥에, 때로는 누군가의 발등 위에 겹쳐지는 작은 그림자였다. _ 본문에서

2014년 출간된 ‘양춘단 대학 탐방기’는 해방 전후부터 지금까지 우리 사회를 고농축, 고밀도로 집적해 유머와 풍자로 버무린 새로운 ‘풍속소설’이다. 감히 21세기판 ‘고리오 영감’이라고 불러도 좋을 이 작품은 시종일관 안녕하지 못한 우리 사회의 어제와 오늘을 풍자와 조롱으로 통렬하게 파헤치면서 리얼리즘 소설의 새로운 계보를 잇는다.

양춘단, 대학 가다

2011년 홍익대 청소노동자 투쟁은 그동안 대학내에서 투명인간 취급을 받았던 노동자들의 존재를 공론화한 사건이었다. 청소노동자는 청소 일을 직업으로 하는 노동자로, 우리에게는 환경미화원이라는 말이 더 익숙하다. 최근 들어서 언론의 집중을 받은 이 사태는 실은 훨씬 더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청소 노동자들의 기본권 찾기 투쟁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지만 그들의 처우는 쉽사리 개선되지 않고 있고, 눈 돌릴 일이 너무 많은 대한민국에서는 언론이나 대중의 관심도 지속적으로 이어지지 않는 편이다.

여기 대학에서 일하는 또 한 명의 청소노동자, 환경 미화원이 있다. 양춘단, 이름부터 예사롭지 않은 우리의 주인공은 주민등록상 나이로는 63세, 실제 나이는 65세다.

양춘단이 대학 환경미화원으로 일하기 시작한 2009년부터 4년에 걸친 시간을 한 축으로 한 이 작품은 또 다른 축으로는 양춘단을 중심으로 남편 김영일, 이미 저세상 사람이 된 부모 양호익, 정순규와 차남 김종찬과 며느리 문유정 3대에 걸친 가족사, 더 나아가서는 춘단의 손주, 손녀 이야기까지로 이어진다. 양춘단이 대학에서 관계 맺는 사람들과 대학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사건들은 비루하고 치졸하게, 때로는 세상과 한판 붙으면서 고단한 삶을 이어가는 무명씨들의 일상을 고스란히 담은 우리 사회의 정교한 축소판이다.

작가는 양춘단이 송정리 시골마을에서 얼마나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는지, 그런 그가 왜 서울 아들 집으로 오게 됐는지, 양춘단이 어떻게 해서 대학 환경미화원으로 취직하는지를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들려준다. 집안 사정상 초등교육밖에 받지 못했지만 늘 배움에 목말랐던 양춘단은 ‘대학’이라는 말 한마디에 기꺼이 청소 일을 시작한다. 하지만 빽으로 들어와 처음부터 ‘로얄층’을 맡으면서 동료들 사이에서 배척을 당한다.

환경미화원들의 휴게실인 네 평 남짓한 컨테이너는 몇 년 전 이 대학 환경 미화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이 신문에 보도되면서 언론을 잠재우기 위한 수단으로 급조된 가건물이다.

컨테이너 박스에 모여든 성씨로만 불리는 사람들은 다들 구구절절한 사연이 있는 자들로, 지하주차장 한켠에 마련된 어둡고 좁고 축축한 컨테이너에서 잠시 쉬거나 급하게 먼지 밥을 먹으며 생활고를 달랜다. 이들과는 사정이 좀 다른 양춘단은 청소를 끝내놓으면 강의실을 기웃거리며 도둑 강의를 듣기도 하고, 캠퍼스를 오가는 대학생들을 구경하며 대학에 들어온 기쁨을 만끽한다. 어두운 컨테이너가 싫어 자신이 일하는 A관 건물 옥상에서 도시락을 먹는 양춘단은 거기에서 시간강사 한도진을 만나고, 둘은 곧 마음을 나누는 친구가 된다.

“사실은, 내가 그 짝 교수 선생을 한두 번 본 게 아니오. 맨 날은 아니지만, 일주일에 두 번씩 점심시간만 되면 꼭 여기서 마주치데요. 그때마다 밥은 먹었어요, 그라고 말을 걸어볼라 해도 괜시리 어려워서 못 했는디, 대학에 안 다닐 때는 몰랐는디 막상 대학에 와보니 께 대학 다니는 사람한테 말 걸기가 보통 어려운 게 아닙디다.” (107쪽)

대학 풍속도로 사회의 안녕을 묻다

거대한 호수와 코끼리 석상은 이 대학의 명물로 꼽히는데, 그런 명성 뒤에는 오랜 세월 소문으로 다져진 웃지 못 할 사연들이 숨어 있다. 호수는 새만금 간척사업과 궤를 같이하며 매몰 위기에 놓였다가 멋진 조경을 가진 생태호수로 재탄생했고, 제작비보다 운반비가 더 들었을 것이라는 코끼리는 태국 소쿰타빗(실제로는 없는 지명)에 봉사를 나간 대학생들에 대한 고마움으로 국왕이 친히 보낸 선물이라는 소문이 돌지만 사실은 또 그렇지 않다.

대학의 비리를 폭로한 대자보와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 또 그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과 뒤에서 밝혀지는 대자보의 실체 역시 작가 특유의 풍자와 조롱으로 유쾌하게 또는 쓸쓸하게 표현하고 있다.

교수와 대학원생의 부적절한 관계를 폭로한 대자보가 붙자 대학은 발 빠르게 홈페이지를 폐쇄하고 학생들은 구 시대의 게시판인 화장실에 온갖 비방 글을 남기기 시작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결국 미화원들의 몫으로, 소장이 갖다 붙인 ‘화지특’(화장실 낙서 지우기 특공 미화조)으로 활동하며 정규업무 외에 두 시간을 더 일하게 되지만 추가업무 수당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화지특’ 활동과 1학기 종강으로 잠잠해진 대학은 2학기 개강과 함께 이번에는 환경미화원들의 시위로 소동을 빚는다. 새로 온 소장과 함께 시급이 깎일 운명에 놓인 미화원들은 난생 처음 머리를 맞대고 자신들의 처지를 알리는 편지를 정성껏 쓰지만 정작 누구에게 보내야 할지 몰라 골머리를 앓는다. 결국 ‘대학’에게 보내자는 결론을 내린 이들이 생각하는 대학의 실체는 독자로 하여금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대학이 누군데?

결국은 제일 위에 있는 총장이 대학의 주인 아닌가. 아니, 내가 듣기로는 총장을 임명하는 사람이 따로 있다던데. 대학이란 건 여기 부지랑 건물들을 말하는 거 아니었어? 숫자를 봐, 뭐가 제일 많아? 학생들이잖아. 대학은 학생들을 말하는 거라고. 하지만 학생들을 다스리는 건 교수인데. 교수는 또 총장 밑이잖아. (214쪽)

용역업체에서 관여할 일이지 본 대학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답변을 미화관리 소장을 통해 전달받은 미화원들은 소장으로부터 온갖 모욕을 받고, 이들은 대학과 소장에 대한 반감으로 생사를 건 시위에 나선다. 하지만 “돈보다는 대학에 댕기고 싶은 마음이 더” 큰 양춘단은 이 시위에서 빠진다. 문제는 공권력이 투입되고, 용역업체가 바뀌고, 양춘단을 제외한 미화원 전체가 물갈이되는 것으로 해결된다. 영문도 모른 채 총장 담화문을 통해 ‘대학의 의인’으로 하루 아침에 둔갑한 양춘단은 모든 것이 궁금하다.

양춘단은 물어보고 싶었다. 어제까지 저 그림자 속에 놓여 있던 그 많은 팻말은 어디로 갔는지, 천 명의 서명을 받는다던 공책은 누가 가져갔는지, 이곳을 떠나선 갈 데가 없다고 외치던 사람들은 어디로 떠났는지. 그러나 대답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270쪽)

유니폼만 푸른색에서 회색으로 바뀌었을 뿐 새로 온 사람들의 살아온 이력은 그 전 사람들과 다를 게 없다. “간병 일을 한 적 있는 최 여사와 아픈 부인을 둔 빚이 많이 이 씨와 공무원이던 한 씨가 나간 자리에 역시나 병원 신세를 진 적 있고 한때는 국가를 위해 일했고 월급으로 빚을 갚아나가는 사람들이” 들어온 것이다.

양춘단을 가장 헛헛하게 만든 사건은 시간강사 한도진의 자살이다. 호수에 시체가 떠오르면서 호수는 더 이상 대학의 명물로 남을 수 없게 됐고, 대학은 어수선한 학내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특별 강사를 부르는 등 학생들에게 더 좋은 볼거리를 제공한다. 언제나 그렇듯 잠깐 떠들썩했던 학생들과 언론은 다시 잠잠해진다. 하지만 양춘단은 자신에게 배달된 한도진의 일기장 때문에 내면의 혼란을 겪는다. 부모형제도 아니고, 경찰이나 학교도 아니고, 자신에게 보낸 이유가 무엇인지 골똘하게 생각한다. 그러고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한도진의 존재를, 시간강사의 자살 문제를 알리기 시작한다.

동시에 양춘단은 비로소 대학에 있는 자기모습이 아닌, 대학 환경미화원으로서의 존재를 자각한다. 그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결국엔 자신도 그들이었던 것이다. 그러고는 대학생활 4년 가운데 남은 3년을 자신만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저항한다.

속악한 세상과 맞짱 뜨다

박지리 작가는 작품을 통해 20세기 중반부터 21세기 현재까지 두 세기에 걸친 이야기를 다루며 우리 사회는 시종일관 변하지 않음을 역설적으로 표현했다. 우리에게 익숙한 인물들로 지금껏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건물 올리고 부지 늘리기가 유행처럼 돼버린 대학사회와 문제의 본질은 보지 않고 그 문제를 어떻게든 활용해 자기 쪽에 유리하게 만들거나 불리하면 발 빠르게 덮어버리는 쪽으로만 발달한 우리 사회를 작가는 다양한 방식으로 비판한다.

전체 49장으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이미 저세상 사람이 된 엄메 아베에게 말 거는 듯한 양춘단의 독백, 영일과 나누는 대화, 대자보와 담화문 형식, 사건 경위서만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이 밖에도 곳곳에서 발견되는 작가의 새로운 글쓰기는 우리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준다. 따로 문학수업을 받아본 적 없는 작가의 거칠 것 없는 자유로움과 상상력은 기존 소설 문법에서는 보여준 적 없는 새로움이기도 하지만, 판소리나 창을 하듯, 혼잣말로 구시렁대는 듯한 입에 딱딱 붙는 자연스러운 문장들은 우리에게 편안함을 주는 익숙함으로 다가온다.

양춘단은 실제 인물이다. 김영일, 양호익도 실제 인물이다. 한도진과 김종철, 서성환이라는 가명으로 숨어 산 장대열도 실제 인물이다. 이름 없이 성씨로만 불리는 김씨, 이씨, 박씨……. 도시를 누비는 경찰 기동대, 파업 노동자들, 새벽일을 나가는 가방 군단, 도서관에서 밤늦게까지 행정학을 공부하는 학생들 그리고 여기서조차 언급되지 못한 수많은 이들까지, 모두 실제 인물이다. 분명, 본 적 있을 거다. (‘작가의 말’에서) <자료제공 : 사계절 출판사>

 

▲ 故 박지리 작가

'다윈 영의 악의 기원'으로 한국 문단에 독보적인 발자취를 남긴 故 박지리 작가

故 박지리 작가(2016년 작고)는 2010년 ‘합체’로 제 8회 사계절문학상 대상을 받으며 한국 문단에 갑작스럽게 등장했다. 진지한 문제의식, 비교 대상을 찾을 수 없는 독보적인 작법이 돋보이는 작품들로 동시대 작가와 독자, 사회에 묵직한 질문을 던졌다. 한국출판문화상 수상작 ‘다윈 영의 악의 기원’을 비롯해 ‘양춘단 대학 탐방기’ ‘맨홀’ ‘세븐틴 세븐틴’(공저) 같은 작품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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